Community 고(高)씨와 제주 고(高)씨의 기원

2009.09.04 15:52

조회 수:21041

 고(高)씨와‘제주 고(高)씨’의 기원

 

대한민국의 모든 고(高)씨의 뿌리는 '제주 고(高)씨'이며,

제주 고(高)씨에서 출발하여 20여개 분파로 나눠진다.

제주 고(高)씨의 기원은 고구려(高句麗) 개국시조 고주몽(高朱蒙)으로 부터 기원한다.

이후, 고구려왕과 왕족은 모두 고씨 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패망이후 패주한 고구려의 왕족은 엄청 멀리 도망가야만 했다.

고구려의 왕족, 고씨들은 양씨, 부씨 등과 함께 제주에 피신하게 되었으며,

고려 중기 까지 숨어 살다 고려 중기 이후 제주 고씨들은 다시 중앙으로 서서히 진출하게 된다.

 

고구려 왕족, 장수왕의 후손은 중국 요녕성에 산재해 있으며 족보도 가지고 있다.

한국에도 횡성 고씨 족보에는 장수왕 후손으로 되어있으며,

몇 년 전 요녕성 고씨와 강원도 횡성 고씨가

횡성에서 만나 조상을 참배하고 종친회를 가진 적도 있다.

 

" ‘ 나는 제주 번개(제주 고씨)를 잡아 쓰노라.

  수부, 잘 만났구나. 만날 사람 만났으니 오죽이나 좋을쏘냐.’  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11:20)

 

“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 의  종통맥(宗統脈)을

' 제주 고(高)씨 '로 이 땅에 오신 고(高) 수부님를 통해 전하여 느낄 수 있으며,

상제님은 배달민족의 종통맥(宗統脈)을 이어온 ' 제주 고(高)씨 '를 택하여

고(高) 수부님을 만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성씨인 강(姜)씨를 택하여 오셨고,

강(姜)씨의 시조는 배달(倍達)민족으로서 경농과 의학의 시조인 염제(炎帝) 신농(神農)이다.

태모님은 배달 민족의 종통맥이며,

고구려 왕족의 종통맥을 이어온 '제주 고(高)씨'를 택하여 오셨다.

강(姜)씨로 오신 상제님과 고(高)씨 오신 태모님이 서로 만나서,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원시반본(原始反本)의 도(道)를 펼쳐 놓으셨고,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와 10년 천지공사(天地公事)를 각각 보신 것이다.

 

약 130년 전,  지구촌 문명의 새로운 이정표를 놓기 위해 상제님과 태모님이 오셨다.

그리고, 새 시대 새 진리로서 증산도(甑山道)는 상제님과 태모님의 천지공사 내용을 바탕으로

포탄(飽綻)지경에 빠진 인류에게 희망과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제주 고씨(高氏)’ 종친회는 탐라개국 설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용출했다고 전해지는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삼고 있으며,

본관은 제주로 단일화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제주 고(高)씨’의 기원은

고구려(高句麗) 개국시조 고주몽(高朱蒙)으로 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고구려(高句麗) 개국시조 고주몽(高朱蒙) 이후로 고구려의 모든 왕과 왕족들은

모두 고(高)씨 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패망이후 패주한 고구려의 왕족은 엄청 멀리 도망가야만 했다.

고구려의 왕족, 고씨들은 양씨, 부씨 등과 함께 제주에 피신하게 된 것이다.

 

탐라개국 설화의 삼성혈(三姓穴)을 소개하면,

제주시 남문 밖에 있는 3개의 구멍을 삼성혈이라 하는데, 또는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이 삼성혈에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神人)이 출현하였고,

그 후 동쪽바다에 떠내려 온 상자에서 세 미녀와 함께 오곡종자와 가축이 나와

이들과 함께 제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씨(高氏)의 본관이 제주(濟州)를 대종으로 하여

장흥(長興)·연안(延安)·용담(龍潭)·담양(潭陽)·의령(宜寧)·고봉(高峰)·옥구(沃溝)·상당(上黨)·

개성(開城)·김화(金化)·토산(兎山)·회령(會寧) 등 20여파로 나타나 있다.

20여파 중에 성주공파(星州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영곡공파(靈谷公派), 문충공파(文忠公派),

장흥백파(長興伯派), 상당군파(上黨君派) 등의 후손이 많고,

그중에서도 영곡공파의 후손이 가장 많아 모든 제주 고씨의 약 5분의1을 차지한다.

그러나 모두 제주에서 분적한 지파이므로,

오늘날에는 제주도 삼성혈에서 솟아나온 3신인(神人)의 한 사람인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제주 단일 본으로 환원하여, 종전의 장흥 고씨는 장흥백파(長興伯派), 상당고씨는 상당군파

(上黨君派), 개성고씨는 양경공파(良敬公派) 등으로 공칭하고 있다.

고씨는 양씨(梁氏)·부씨(夫氏)와 함께 제주의 지배 씨족으로서,

이들 세 성씨의 시조 탄생에 대한 삼성혈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제주목건치연혁조(濟州牧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처음에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라 일컫는 세 사람이

그 당을 나누어 살았다고 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동쪽으로부터 이상한 상자가 바다위로 떠내려 온 그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세 미녀와 오곡의 씨앗, 그리고 망아지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세 사람은 세 미녀를 각각 배필로 맞아 제주·대정(大靜)·정의(旌義) 세 지역으로

목축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로부터 탐라는 날로 융성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곧 탐라의 개국설화로 전해 오는 이야기인데,

이들 3신인 즉 고을나는 고씨의 시조, 양을나는 양씨(良氏:뒤에 梁氏로 개성)의 시조,

부을나는 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제주 고씨 (濟州高氏) 高氏中央宗門會 고씨 족보

 

1> 시조 : 고을나 [高乙那]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고씨[高氏]는 탐라개국설화에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용출했다고 전해지는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삼고  본관은 제주로 단일화 하고 있다.

     탐라개국설화의 삼성혈[三姓穴]을 소개하면

     제주시 남문밖에 있는 3개의 구멍을 삼성혈이라 하는데 또는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이 삼성혈에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神人]이 출현

     하였고  그후 동쪽바다에 떠내려온 상자에서 세미녀와 함께 오곡종자와 가축이 나와 이들과

     함께 제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 등에는 본관을 122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모두가 제주고씨에서 분적된 계통

     임이 분명하다.
     고씨는 시조로부터  45세손 자견왕[自堅王]까지 탐라군주로 세습해 오다가

     46세손 말로[末老]가 고려에 입조[入朝]하여 처음으로 본토 진출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들 유[維], 강[綱], 소[紹]가 모두 벼슬길에 올라 가문의 번성을 이루었고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명문의 전통을 이어왔다.

     말로[末老]의 증손인 영신[令臣]代에서부터 영곡공파를 비롯하여 20여파로 갈리었고

     본관은 제주고씨를 대종으로하여  장흥, 연안, 등 10여본이 분적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20여파 중에 성주공파[星州公派:말로의 10세손 인단],  전서공파[典書公派:13세손 신걸],

     영곡공파[靈谷公派:15세손 득종], 문충공파[文忠公派:11세손 경], 장흥백파[長興伯派 :

     10세손 중연], 상당군파[上黨君派:4세손 공익], 등이 후손이 많고

     그중에서도 영곡공파의 후손이 가장많아 모든 제주고씨의 약 5분의1을 차지한다.

 

3> 집성촌

     충남 금산군 부리면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전남 장성군 삼계면 능성리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
     전남 신안군 임자면 도찬리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한동리
     전남 여천군 화정면 백야리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

 

고씨(高氏)의 본관이 제주(濟州)를 대종으로 하여

장흥(長興)·연안(延安)·용담(龍潭)·담양(潭陽)·의령(宜寧)·고봉(高峰)·옥구(沃溝)·상당(上黨)·

개성(開城)·김화(金化)·토산(兎山)·회령(會寧) 등 10여 본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모두 제주에서 분적한 지파이므로

오늘날에는 제주도 삼성혈에서 솟아나온 3신인(神人)의 한 사람인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제주 단일본으로 환원하여 종전의 장흥고씨는 장흥백파(長興伯派), 상당고씨는 상당군파

(上黨君派), 개성고씨는 양경공파(良敬公派) 등으로 공칭하고 있다.

고씨는 양씨(梁氏)·부씨(夫氏)와 함께 제주의 지배 씨족으로서,

이들 세 성씨의 시조 탄생에 대한 삼성혈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제주목건치연혁조(濟州牧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처음에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라 일컫는 세 사람이

그 당을 나누어 살았다>고 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동쪽으로부터 이상한 상자가 바다위로 떠내려와 그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세 미녀와 오곡의 씨앗, 그리고 망아지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세 사람은 세 미녀를 각각 배필로 맞아 제주·대정(大靜)·정의(旌義) 세 지역으로

목축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로부터 탐라는 날로 융성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곧 탐라의 개국설화로 전해 오는 이야기인데,

이들 3신인 즉 고을나는 고씨의 시조, 양을나는 양씨(良氏:뒤에 梁氏로 개성)의 시조,

부을나는 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제주고씨세보(濟州高氏世譜)》에 의하면 탐라는 고을나로부터 45세 자견왕(自堅王)까지

대대로 고씨가 세습 통치해 오다가 46세 말로(末老)가 고려에 입조(入朝)하였으니

이가 곧 모든 고씨의 중시조라고 밝히고 있다.

고씨는 말로가 고려에 입조한 후 그 아들인 유(維)·강(綱)·소(紹) 3형제가 모두

고려조에 등과함으로써 비로소 벼슬길이 트이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탐라의 고씨가 속속 유기로 진출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유는 고려 문종 대 우복야에까지 오름으로써 고려에 벼슬한 최초의 탐라인이 되었으며

이로부터 상서(尙書) 9명, 한림(翰林) 12명을 배출, 탐라 왕족에서 일약 고려의 명문가로 등장

하였고, 조선조에서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씨의 파계는 중시조 말로의 4세에서

  상당군〈공익〉파(上黨君〈恭益〉派),

  양경공〈영신〉파(良敬公〈令臣〉派),

10세에서 성주공〈인단〉파(星主公〈仁旦〉派), 장흥백〈중연〉파(長興伯〈仲 〉派),

11세에서 문충공〈경〉파(文忠公〈慶〉派), 화전군〈인비〉파(花田君〈仁庇〉派),

13세에서 전서공〈신걸〉파(典書公〈臣傑〉派), 문정공〈택〉파(文禎公〈澤〉派),

15세에서 영곡공〈득종〉파(靈谷公〈得宗〉派) 등 9개파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중에서 특히 영곡공파가 가장 많아서 오늘날 전 고씨의 약 5분의 1이 이 파에 속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나기로는 장흥백파를 들 수 있는데

전남 담양군 창평 일대에 사는 고경명(高敬命)의 후손 일문이 특히 유명하여

전남 지방에서는 이 일문을 창평고씨(昌平高氏)라 부르며 〈호남 4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씨가 육지로 진출한 이후 고려조에서 고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의종 때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문경공(文敬公) 고조기(高兆基),

문하시중 검교장소감(檢校將少監) 등을 지내고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진 고공익(高恭益),

예종조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양경공(良敬公) 고영신(高令臣),

충렬왕조에 탐라를 고려에 환속하는 데 공을 세운 고인단(高仁旦),

홍건적 난 때 공민왕을 호종한 공으로 장흥백에 봉해진 고중연(高仲 ),

고려조에 금오위 상장군(金吾衛上將軍)을 지내고 화전군(花田君)에 봉해진 고인비(高仁庇),

우왕조에 호부전서를 지낸 고신걸(高臣傑),

공민왕조에 진흥관대제학(進興館大提學)겸 춘추관사(春秋館事)를 지낸 문정공(文禎公)고택(高澤),

충선왕조에 익대원훈(翊戴原勳)으로 제양백(濟陽伯)에 봉해졌다가 옥성군(玉城君)으로 개봉된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문과 급제자 77명을 배출했는데,

그 중에서 고씨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영곡공파 파조 고득종(高得宗)과 장흥백파의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3부자를 들 수 있다.

고득종은 세종조에 두 차례나 사신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고,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에 건너가 일황(日皇)의 서계(書契)를 받아 오는 등

외교에 활약이 많았을 뿐 아니라 문장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고경명은 명종 때 문과에 급제, 호당(湖當)에 뽑혔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 싸움에서 둘째아들 인후(因厚)와 함께 전사했다.

그의 장남 고종후(高從厚)는 당시 임피(臨陂)현감이었는데,

스스로 복수장(復讐將)이 되어 의병을 이끌고 왜병과 싸우다가

진주성 방어전에서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전사하였다.

이들 세 사람을 <진주의 3장사> 라 부른다.

고려(高呂)는 조선 개국공신 3등으로 고성부원군(高城府院君)에 봉해졌고,

고희(高曦)는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으로 영성군( 城君)에,

고언백(高彦伯) 역시 임진왜란 때 경기도 방어사·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전공을 세워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제흥군(濟興君)에 봉함을 받았다.

이밖에 조선 초기의 학자로 김지(金祗)와 함께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를 이두(吏讀)로 편찬,

조선조 법전의 기본 문헌이 되게 한 고사경(高士 ),

광해군 때 정치가 문란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와 학문에 전념,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지은 고상안(高尙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시문에 뛰어나 <대학(大學)>의 여러 편을 시조로 읊어

사상적 체계를 시(詩)·부(賦)·가(歌)·곡(曲)등으로 표현한 고응척(高應陟)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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